나는 내가 빨리 하늘로 가버렸으면 좋겠어 - [ 에세이 ]

 "나는 내가 빨리 하늘로 가버렸으면 좋겠어"

- 거짓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심도 아닌 노인들의 입버릇


  어젯밤에도 나는 야간 근무를 했다. 일본 노인시설의 야간근무의 시간은 정말 길다. 보통 노인시설의 근무시간이 17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가 기본적인 근무시간이다. 어떤 노인 시설은 16시부터 다음날 10시까지 근무해야 하는 노인시설도 있다. 처음 야간근무시간을 들었을 때, 너무 긴 근무시간을 듣고 기가 막혔다. 그래도 내가 어쩔 것인가. 을의 입장인 직원은, 직장생활을 계속 하려면 따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누군들 야간 근무가 힘들지 않으랴. 모든 이용자 노인들이 취침을 하기에 분주하게 움직이며 신체 개호를 해야 하는 것은 낮 근무에 비교하여 많지 않다. 다른 근무자 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야간근무란, 자정이 넘은 시간부터 미친듯이 밀려오기 시작하는 졸음과 씨름하는 것이 내 야간근무의 전부인 것 같다.

  이용자 노인분들의 취침시간은, 저녁 21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가 정해진 취침시간이다. 정해져 있는 시간이라고 해서, 그 시간에 반드시 취침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강제사항은 아니다. 그저 시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취침모드로 변경하는 것 뿐이다. 거실과 복도의 불을 소등하고, 각 방에 들러 취침을 종용하는 것 그것 뿐이다. 

  개별 이용자 노인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쉬시며 텔레비전을 보시기도 하신다. 취침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노년기의 신체의 특성상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신다.  어떤 할머니는 저녁 7시만되면 잠들기 시작하여 다음날 오전 7시에 일어나시는 분도 있다. 또 다른 할머니의 경우는, 저녁식사 이후 부터  새벽 2시까지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시며 '집에 가겠다'고 반복적으로 야간 담당직원에게 호소하는 할머니도 계신다. '집에 보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습관적으로 직원에게 말하신다. 이런 분들을 잘 달래고 돌보는 것이 야간업무의 과제이다. 

  어제 밤 12시 넘어서, 이용자들의 야간상황을 기록하는 기록물을 거실에서 열심히 적고 있었다. AI 까지 등장 하는 2023년에 왠만하면 컴퓨터로 근무상황을 기록할 법도 하건만, 내가 일 하는 곳은 아직 손으로 직접 개호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일본어 글쓰기 연습도 되기에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상황을 바꿀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사실 컴퓨터도 있긴 하지만, 시설 내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직원이 몇 명 없다. 아주 간단한 워드 작업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아예 컴퓨터 자체를 만지려고 하지 않는 직원이 대다수다. 이런 상황을 보면, 참 일본은 아날로그의 나라이다 싶다. 

  어둠속에 스탠드 전구 하나만 밝히고 열심히 이용자 파일에 야간시간의 상황을 적어나가고 있었는데, 왠지 뒤쪽에서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듯한 쎄~한 느낌이 들어 무심코 뒤돌아 봤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집에 보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나에게 협박(?) 하셨던 할머니가 내 뒤에서 나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 할머니는 실내화를 신고 돌아다니기도 하시고 양말만 신고 돌아다니기도 하신다. 그 때는 양말만 신고 계셨다. 그래서 발소리가 안났던 것이다.

  "앗! 깜짝이야!"

라고, 나는 무심코 한국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숫자로 된 한국말 욕이 튀어나올뻔 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인가 보다. 너무 깜짝 놀라면 입에서 숫자가 튀어 나올려고 한다. 

  그 할머니는 다짜고짜,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오밤중에 간식으로 비치된 작은 도넛 한 개와 보리차를 한 잔 드렸고, 그 할머니는 '오이시~(맛있네)'라는 말을 연발 하시며 열심히 도넛을 드셨다. 한 입거리로 끝날 것 같은 도넛을 조금씩 쪼개서 드시느라 한 10분정도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10분동안 드실 정도로 도넛이 큰 것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혼자 했다.  도넛과 보리차를 맛있게 드시고 방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는 새벽 5시까지 잘 주무셨다. 새벽 5시부터 다시 '집에 가겠다'라는 말은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밤에 직원이 할 일은,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는 노인 분들의 기저귀를 교환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노인시설에서 하는 업무 중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다 큰 어른들의 대소변을 누가 직접 보고 만지고 싶겠는가. 사실상, 이 기저귀 교환하는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이 업계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벽 2시는 기저귀를 교환해야 하는 시간이다. 메구미 할머니의 방에 들어갔다. 조용히 주무시고 계시는 메구미 할머니를 불렀다. 

 "죄송해요, 기저귀 좀 금방 교환하고 나갈게요"

라고 말하며, 기저귀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메구미 할머니는 인지증이 거의 없으시다. 그러나 신체의 노화로 걷지를 못하시고, 휠체어에 의지해서 생활하신다. 

  인지증이 거의 없는 노인들의 기저귀 교환을 하는 경우도, 참 난감한 경우 중에 한 가지이다. 차라리 인지증이 있다면, 수치심을 못 느끼거나 덜 느낄 텐데, 인지증이 거의 없다보니 수치심을 느끼신다. 상대방이 수치심의 감정을 느껴버린다면, 나도 약간 불편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메구미 할머니는 매일 나에게 이야기를 하신다.

 "내가 어렸을 때, 옆집에 살던 아주머니가 [우리 어무니가 빨리 가 버렸으면 좋겠는데, 빨리 가 버렸으면 좋겠는데...]라는 말을 계속 했었어. 그 때는, 그 아주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죽을 날이 가까워지니 그 말이 요즘 기억이 나고, 그 아주머니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사람 구실은 전혀 못하고, 대소변 조차도 본인이 해결 못하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야 되니, 이게 무슨 고약한 상황인가 싶어. 이건 사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니고 참 애매하게 숨만 붙어 있는 것 같아."

그러시면서, 말을 덧붙이셨다.

"나는 내가 빨리 하늘로 가버렸으면 좋겠어"

나는 딱히 할 말도 없고 해서, 대충 둘러 대며 대답을 드렸다.

"그래도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요. 메구미 할머니 덕분에 제가 여기서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메구미 할머니 덕분에, 일도 하고 월급도 받고, 집의 월세도 내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할 수있습니다. 메구미 할머니는 내가 부자가 될 때까지 건강하게 계시다가 가세요. 내가 부자가 되려면 아마 100년은 걸릴 것 같으니, 앞으로 100년은 더 사셔야 될 것 같은데요."

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고마워. 그래도 나는 내가 빨리 가버리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 것 같아."

라고 하시며 다시 주무셨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일어나셨다. 야간 근무의 업무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배식하는 것도 포함이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빵을 굽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일본 노인분들은 아침에 빵을 드신다. 한국의 노인분들에게 아침식사는 밥과 국이 맞는 것 같지만, 일본 노인들은 빵과 샐러드다. 처음에 조금 의아했다. 빵과 커피, 그리고 샐러드가 아침식사의 메인 메뉴이다. 처음에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완전 미국 식이라고 생각했다. 참고로, 나는 미국에 가 본 적은 없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메구미 할머니에게 복용약을 가져다 드렸다. 날짜와 이름을 확인 시켜 드렸다. 그리고 메구미 할머니의 손바닥에 알약을 올려 드렸다. 메구미 할머니가 아침에 복용하시는 알약은 14개나 된다. 메구미 할머니는,

"무슨 약이 이렇게 많은지. 먹어도 소용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라는 말씀을 하시더니, 허공을 5초간 멍하게 쳐다보셨다. 그리고 나서는 본인의 손바닥에 올려진 약들을 하나 하나 체크하기 시작하셨다. 알약의 총 개수는 맞는지, 필요한 약들이 제대로 포함되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하셨다.

"이것은 심장약, 이것은 혈압약, 이것은 혈압약 먹을 때 같이 먹는 약...음...모두 제대로 있네"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메구미 할머니에게 농담을 건넸다.

"아니, 어제 밤부터 저한테 계속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니, 드시는 약은, 뭘 그렇게나 꼼꼼히 확인하세요? 뭐 이상한 약이라도 들어있을까봐요? 아니면, 약사가 약 빼 먹었을까봐? 이렇게 본인 건강 챙기시는 분이 뭔 빨리 가버리고 싶네 어쩌네 하셨어요?  할머니 순 거짓말만 하셨네. 노인들이 죽고 싶다는 말은 순전히 거짓말 이라는 말이 딱 맞네~"

라고 농담을 건넸더니, 메구미 할머니도 웃음이 빵 터지셨다.

"그래, 니 말이 다 맞다. 호호호. 그런 말을 하지를 말아야겠다"

그렇게 메구미 할머니와 웃으며 아침식사와 약 복용까지 마치며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서 너무 피곤한 나는 기절 하듯이 잠을 청했고, 지금 저녁에 다시 일어나서 이 글을 적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