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증(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에게 오는 스트레스에 대하여 - [ 에세이 ]
인지증(치매) 노인과 가족
이 글은, 인지증(치매)노인을 돌보는 가족의 입장에 서려고 하는 글에 가깝습니다
몇 주전 수요일 근무일 이었다. 나는 그날 목욕 담당 이었기에 이용자들의 목욕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이른 아침 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그 때, 케어매니저가 나에게 다가와, 일본인 [히라노] 할머니의 목욕 시간에 몸을 좀 자세히 살펴 확인해 주기를 부탁 받았다.
가족으로부터 가정폭력이 의심 되니, 혹시 멍 자국이 있는지 자세히 살펴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인지증(치미)이 있는 [히라노] 할머니는, 전날 다른 이용자 할머니에게 [손자에게 머리를 맞았다]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직원에게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몰랐지만, 그 이야기를 들었던 다른 이용자가 직원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보통 인지증을 가지고 있는 노인은, 본인에게 있었던 사실 혹은 경험을 가감없이 이야기 하는 성향이 있다. 의도적인 가공된 이야기는 하지 않으며, 할 필요성도 없는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 본인에게 있던 사실과 다른 상황이 섞여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을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많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혹여 노인 당사자가, 어떤 사실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확실이 있을 경우, 의도성을 가지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인지증 노인의 성향이다. 무언가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면, 확인 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착각이든 간에 일단을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 개호직의 의무이다. 의무가 아닐지라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확인 하는 것이 보통이 아닐까.
히라노 할머니의 목욕을 도우며, 몸을 샅샅이 살펴 보았지만, 멍 자국은 보이지 않았고 작은 생채기 조차도 없었다. 케어매니저를 불러 신체에 멍자국 혹은 타박상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를 했다. 그리고 그 매니저는 알겠다고 한 후, 관계기관에 보고를 했다.
물론 특이사항 없음으로 보고를 했다. 일본은 이런 보고체계가 잘 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인인 내가 볼 때, 이것은 일본인의 특성 이기도 한 것 같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보고체계가 아주 잘 이루어져 있고, 나쁜 의미로 해석 한다면 본인이 책임지고 싶지 않은 상황이 있다면, 빨리 그 공을 다른 곳으로 넘기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캐어매니저는 관계기관에 잘 보고를 마쳤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이 사실을 일단은 알려야 하기에 딸에게 연락을 했다. 히라노 할머니가 손자에게 맞았다는 이야기를 우리 시설에서 하고 다녀서, 일단은 우리가 히라노 할머니의 신체를 살펴 보았지만 그런 점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 따님은 알고 계시는가. 아직까지는 특이사항이 없어 보이지만 일단 '키-파-손(key person : 이용자의 핵심 보호자)'에게 알려야 하기에 일단 연락을 드린다 라고 연락을 했다. 일본에서는 이용자 노인과 관련하여 가장 측근에서 보호하고 있는 가족 혹은 지인을 '키-파-손'이라고 부른다.
그 때부터 상황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따님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고, 언제 어디서 정확히 몇 시 정도에 그런 말을 어머니가 하셨는지, 정확히 [손자]라는 말을 한 것이 맞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캐어매니저는 황당했다. 그저 따님의 반응이,
"아, 그렇습니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모르니 저도 어머니(이용자 할머니)의 상태를 살펴보고,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지만,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을 한다면, 그냥 상황 종료인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 딸이 화를 내는 바람에 이상하게 전개 되고 말았다. 딸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히라노 할머니가 데이서비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딸은 히라노 할머니에게, '집에서 지내지 말고 거기(시설)에서 계속 살면 되지 왜 집으로 돌아왔느냐' 라며 화를 냈다고 했다. 이 말은 히라노 할머니로부터 들었고, 상황상 그런 말을 실제로 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도치 평범하지 않은 반응이 우리도 이해가 가지 않아, 우리도 다방면으로 여러가지 조사를 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조사 후, 몇 년전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경찰에 신고가 접수가 된 적이 있었던 이력이 있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그런 불필요한 반응이 나왔던 것이구나 라며 이해를 했다. 이제, 실제 이 번에 손자로부터 실제 폭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특이사항 없음으로 종결 직전에 있었고, 이미 보고도 모두 마친 후 였던 것이다.
일주일 후, 그 딸은 시설로 방문했다. 그리고 시설장과 면담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면담을 해야 했다. 그저 평범하게 지나갔을 일이 면담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딸은 전화와 라인(LINE : 우리 시설은, 이용자의 가족들에게 간단한 연락을 할 때는 LINE 메세지를 이용한다)으로 연락을 주고 받았을 때, 매후 흥분된 상태로 화를 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시설에 방문 해서도 화를 낼 줄 알았다.
그러나 정말 의외로 평범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매너 있는 대화가 오갔다. 오히려 긴장된 모습이었다. 혹여 시설에서 본인의 어머니의 데이서비스 이용을 중지 시키지 않을까 염려하며 시설을 찾았던 것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따님과 면담을 요청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자 한숨 돌리시며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용자 할머니가 집에서 손자에게 맞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도 노인요양시설도 그렇겠지만, 일본의 개호시설도 마찬가지이다. 노인복지와 노인 시설은 1차적인 목적으로는 인지증(치매)노인들을 위한 시설이다. 하지만 다른 목적은, 인지증(치매)의 노인이 있는 가족들을 위한 목적이 있기도 하다.
인지증(치매)노인이 있는 가정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지증(치매) 노인의 행동은 때로는 갓난아이와 같으며, 유치원 아이와 같은 행동을 보인다. 가족들은, 그 노인에게서 하루종일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24시간 곁에서 지켜보아야 한다. 위험한 상황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일은 너무 많고, 음식을 절제없이 계속 드셔버리기도 하며, 집 안의 이불 위에서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이는 등 화재의 위험도 항상 도사리고 있고, 집 안에서 넘어져 골절상을 입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상황들로 인하여, 인지증 노인이 있는 가정이라면 24시간 그 곁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어떻게 개인적인 볼일을 볼 수 있겠으며, 개인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직장에 출근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상황이 하루 이틀 이라면 가족들이 감당하고 버틸 수 있지만, 인지증이 한 번 발현되면 대부분 임종까지 그 상황이 지속되기 때문에 가족들은 반드시 지쳐버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한국의 '장기요양보험' 제도 이며, 일본의 '개호보험' 인 것이다.
개호직에서 적지 않게 근무 했었던 나의 경험으로 비추어 볼때, 인지증의 노인은 가족들이 돌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너무 힘들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물론이며, 정신적인 피로도 엄청나다.
가정에서 부모 혹은 조부모가 낮은 레벨의 인지증이 발견 되었을 때는, 누구든지 가족 안에서 돌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부모 혹은 조부모에 대한 가정폭력이 적지 않게 발생하기도 한다. 인간적으로 너무 이해가 간다. 5분 단위로 집 밖으로 뛰쳐 나가려는 행동이 하루종일 반복되고, 같은 질문 혹은 말을 하루에도 옆에서 수백번 반복하여 물어보며, 옷가지가 있는 곳에서 불을 붙여 담배를 스스럼 없이 피우고, 옷에 대소변을 그대로 배설해 버리는 행동을 하루에도 3~4번 반복되며, 샤워 혹은 목욕을 하도록 도우려고 할 때 주먹으로 가족들의 얼굴을 때리거나 손톱으로 긁어 버리는 행동이 매일처럼 반복된다고 할 때, 어떤 가족 인들, 어떤 자녀 인들 그 상황을 웃으며 버틸수 있겠는가.
어떤 의미에서, 노인시설 개호시설은 노인을 위한 시설 이기 보다는, 노인이 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한 시설이다. 온전히 인지증(치매)를 가족의 책임감으로 해결하기를 맡겨버린다면, 언젠가는 가정이 무너져 버리고 결과적으로 사회가 무너져 버릴 것이 분명하다.
인지증이 있는 노인이 집 안에서 가족들에게 폭력에 노출되고, 방치되고, 때로는 더 심한 일들이 아직도 종종 일어 난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 가족들을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나는 가족이 돌보는 것보다, 생판 남이 그 노인들을 돌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편이 더 냉정하게 노인들을 돌보며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멀쩡했던 부모가 대소변을 못가리고 온 방안을 더럽히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을 때, 자식의 입장에서 얼마나 기가 차고 억장이 무너지겠는가. 차라리 남이라면 가족보다는 평정심을 유지할 것이다. 개호시설에 있는 직원이라면, 그런 일들이 일상 이기에 (가족보다는) 평정심을 가지고 노인을 대할 수 있을 것이며,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에게는 노인시설이 필요하고 노인요양원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을 위한 시설인 것이다. 가족을 대체할 시스템이다. 노인 시설은 가족의 편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족이 그저 평범한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인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히라노 할머니]의 딸에게 했다. 우리는 [히라노 할머니]의 편에 서 있기도 하지만, 그 가족의 편에 서 있기도 한다는 것을. 가족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혹여 가족내에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히라노 할머니]의 개호를 돕고 있으니, 가족들도 우리의 일을 이해 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반 상식을 훨씬 벗어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가족들도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정 내에서 협조해 주시기를 부탁드린 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가족들이 힘든 것을 이해하고 가족의 입장에서 서 있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저희가 편이 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버리는 상황이 나온다면, 그 때는 가족의 편에 서 있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히 말씀드렸다.
그렇게 상담을 마쳤고, [히라노 할머니]의 따님은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인지증(치매) 노인을 모시고 있는 모든 가족들의 삶을 응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