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로 인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정체성, 명자 아끼꼬상

 * 제가 일 하고 있는 개호시설에는 재일교포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이용자(노인) 분들 중에도 몇 분이 계시고, 함께 일 하고 있는 직원 중에도 몇 분이 계십니다.

 재일교포 1세 분들은 본인의 시대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생활하시는 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제일교포 2세부터는 일본에서 태어나신 분들을 가리 킵니다. 재일교포 1세 분들은 보통 시설을 이용하시는 이용자(노인)분들이고, 2세 혹은 3세 분들은 (아직 나이가 노년의 연령이 아니시기 때문에) 직원 분들 중에 있으십니다.

 제가 이 곳에서 2세 혹은 3세의 분들과 함께 근무하며, 그들로 부터 듣고 또한 개인적으로 느낀 것들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재일교포 분들에 대하여 색안경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며, 단순히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들에 근거하여 자유롭게 적어보려 하는 것 뿐이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일본에 오기 전, 재일교포 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이미지는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나가서, 수 많은 차별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 이라는 이미지 이외에는 딱히 연관되어 떠오르는 이미지도 없었고, 개인적인 느낌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일교포를 만나본 적이 없으니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본에 와서 재일교포를 만나보고 나서는 생각보다 역사가 복잡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 두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재일교포 1세 분들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 간 사람들이기에 한국에서 흔히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느낌이다. 이 분들은 1910~1940년대에 한국에서 일본까지 배를 타고 와서 일본에 정착한 분 들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 할머니, 할아버지 이며 단지 일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한국사람 느낌이다. 집에서 만들어 드시는 음식도 한국음식 그대로이며, 한국의 지방 사투리도 그대로 사용하고 계신다. 한국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 들이신 것이다. 사회적 차별을 가장 많이 받았던 세대이다. 일본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거주 했던 곳도, 거주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부락을 형성하며 사셨던 것으로 보인다.

 재일교포 2세 분들의 출생은 1960년대 즈음부터 인 듯 생각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일본사람들의 분위기와 한국사람의 분위기가 혼합되어 있는 분위기이다. 이 분들은 '나는 한국사람', '나는 조선사람'이라는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내가 조심히 추측해 볼 때,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성장한 환경으로 인하여 생성된 강한 자의식이 아닐까 조심히 생각해 본다. 1세와 더불어 2세까지 사회적 차별 속에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집도 소유할 수 없었으며, 집을 빌리는 것도 불가능 했던 세대라고 직접 이 분들께 들었다. 일반적인 직장에도 취직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부모의 세대가 이를 악물고 자녀들을 사회로 진출하도록 노력했던 것으로 보이며, 2세 당사자들도 악착같이 돈을 벌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거나, 성공하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만 했던 두 가지 분류로 나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재일교포 2세 중에는 사업가로 성공한 사람이 많거나, 의사들이 많았다. 이 분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국적은 한국 국적 혹은 북한 국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재일교포 3세 분들 부터는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외적으로 구분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본인들이 말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가 없다. 내가 느끼기에 재일교포 3세의 시대에 와서는 사회적으로 차별이 덜 했던 것 같다. 물론 보이지 않게 있었겠지만, 대놓고 차별을 하지는 않았던 시기 였던 것 같다. 이 분들의 정체성은 스스로 결정하는 듯 했다. 한국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재일교포 3세도 있었다. 본인의 국적을 일본인으로 결정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한국에 가 본 적도 없고, 한국어도 사용하지 않으며, 한국에 딱히 관심도 없으니 그렇게 결정을 하는 듯 보였다. 나와 개호시설에서 2년간 함께 근무하다 퇴사한 여자 직원이 한 명 있었는데, 그 사람이 퇴사한 이후에 그 사람이 제일교포 3세인 것을 알았다. 그것도 다른 직원으로부터 들어서 알았다. 물론 당사자는 나와 대화할 때, 한국어를 전혀 사용하지도 않았고 딱히 한국에도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며, 내가 만나서 느꼈던 이미지에 근거하기 때문에 정확히 그들을 설명한다고 할 수 없다. 재일교포의 각 가정의 분위기도 있고 혹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재일교포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1세대의 사람들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그들은 본인의 조국을 한국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었고 조선이라고 표현하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 한국과 북한의 명확한 구분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재일교포 1세대는 본인들의 자녀들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대한민국의 성향을 가진 학교에 등교시킬 것인지 북한의 사상과 성향을 가진 학교에 등교시킬 것인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아마 1세대 당신들의 고향이 어디인지에 기준을 두고 결정 했었지 않았나 싶다. 

 일본에 있는 재일교포의 학교는 두 종류이다. 나도 일본에 와서 처음 알았다. 한 곳은 대한민국의 지원을 받고, 한국의 시스템을 따르는 학교와 북한의 사상을 가르치는 학교가 따로 있었다. 이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아 여기는 정말 외국 이구나" 생각했다. 북한의 사상을 가르치는 학교가 일본에 있다니. 내가 무지 했던 건지,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었다.

 나와 현재 함께 근무하는 직원 중에 '이명자'씨라는 분이 있다. 재일교포 2세 이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자를 근거로 만든 이름을 가지고 계신다. 한자는 明子 라는 한자를 사용한다. 이 한자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면, '아끼꼬' 라는 발음이 된다. 회사에서는 '아끼꼬 상' 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끼꼬 상은 재일교포 2세 이며, 아직까지 한국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최근에 나에게 말했다. 아끼꼬 상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조선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북한 학교를 조선학교라고 말한다. 북한학교를 졸업한 재일교포인 것이다. 그러나 아끼꼬 상은 북한도 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는 한국과 북한의 존재일 뿐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만 살아온 2세의 삶이 이렇다. 

 본인들의 자녀도 북한 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재일교포는 성인이 되면, 본인들이 국적을 정한다고 한다. 이 것도 여기서 처음 알았다. 본인들의 국적을 본인들이 정하는 것이라니. 생소 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성인이 된 재일교포들은 본인의 국적을 한국으로 할 것인지, 북한으로 할 것인지, 일본으로 할 것인지 결정한다고 한다. 일본으로 결정할 경우에는 귀화를 신청하여 절차를 밟는 것 같았다. 역시 생소하고 신기한 이야기이다.

 아끼꼬 상은 나에게 

"나이가 50~60이 되고 보니, 한국 이니 북한 이니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나. 그저 이제는 나와 내 식구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고, 내 자식들이 자기 일 잘 하다가 결혼하는 것 보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 그러다가 혹시 손주 들이 생기면 손주들 장난감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

라는 말을 했다. 너무 맞는 말 아닌가? 매우 동의 한다.

 조선 학교를 졸업한 아끼꼬 상은, 당연하게(?) 최근까지 한국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긴 듯 보였다. 나에게 한국에 대해서 많은 것을 묻는다. 그리고 한국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 한다. 조선 학교를 졸업한 후 평생을 그 사상 테두리 안에서 살아왔었는데 왜 갑자기 최근 몇 년사이에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한국여행을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지에 대한 계기는 다음과 같다.

 몇 년 전의 어느 날 회사에 출근을 했더니, 아끼꼬 상이 나에게 물었다.

"너 박소중 알아?"

"박소중? 그게 뭐죠? 사람 이름인가?"

"넷토후리쿠스를 계약했어. 요즘 집에서 한국 드라마 하루 종일 보고 있어"

 넷토후리쿠수란 넷플릭스의 일본어 발음이다. 일본어의 영어 발음은 언제 들어도 당황스럽다.

"넷플릭스 계약 하셨어요?"

"응. 한국 드라마 엄청 재밌네. 태어나서 한국 드라마 처음 봤어. 태어나서 한국 드라마 처음 봤어. 박소중 이라고 엄청 잘생긴 배우 있던데? 몰라? 이태온 쿠라수 몰라?"

"아~ 이태원 클래스? 박소중이 아니고 박서준 이에요"

"응, 박소중"

"박. 서. 준~"

"박. 소. 중~"

"마음대로 하세요. 박서준이를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가 비껴 가지만, 일본어의 발음에는 [어] 발음이 없다. 참고로 [으] 발음도 없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한국어 발음과 영어 발음을 굉장히 힘들어 한다. 좋은 방향으로 생각 해 본다면, 일본사람이 한국어를 발음하면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머니] 를 [오모니] 라고 발음하며, [컴퓨터] 를 [콤퓨타] 라고 발음하며, [헬로우] 를 [하로] 라고 한다. 그리고 [커피] 를 [코히] 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코히가 뭐니 코히가. 최대한 발음이 원래의 단어인 [coffee] 와 비슷하기라도 해야지.

다시 넷플릭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한국에서도 굉장히 인기 있었던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가 일본에서도 대 히트를 쳤다. 역시 'K-드라마' 다. 전 세계를 휩쓰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끼꼬 상은 한동안 이태원에 가보고 싶다고 나에게 노래를 불렀다. 이태원이 어떤 곳인지 어떤 분위기인지 알려 달라고 매일 같이 나를 귀찮게 했다. 

'아니, 이보세요  나이 많은 언니! 조선학교 졸업 했다며. 이렇게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도 괜찮아?'
라며 속으로만 이야기 했다.

아끼꼬 상은 한동안 조용 한가 싶더니,

"횬빈 알아?"

라고 나에게 물었다.

"횬빈 아니고 현빈"

"응, 횬빈"

 이 아줌마, 이제는 [사랑의 불시착] 인지 뭔지 하는 드라마에 빠진 모양이다. 정작 나는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이 아줌마는 아마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모두 섭렵하는 중인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이종재 알아?"

라고 나에게 묻길래, 아끼꼬 상이 이제는 [오징어 게임] 으로 넘어갔구나 라고 생각했다.


 한국 드라마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하는 아끼꼬 상이다. 한국의 드라마가 너무 재밌다고 매일 같이 나에게 말했다. 한국 드라마에 이어 한국영화에 빠지더니 [마동석] 을 물어본다. 그 뒤에는 K-pop 으로 넘어가시더니 BTS비롯한 아이돌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기 시작했다. 아니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아끼꼬 상? 조선학교 졸업했다며? 이제는 완전히 한국 문화에 빠져 밤새도록 넷플릭스를 보느라 눈이 충혈된 상태로 매일 출근 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한국 여행가고 싶다고 나만 만나면 노래를 부른다. 서울 이태원이 어쩌고 저쩌고, 명동이 어쩌고 저쩌고, 동대문이 어쩌고, 부산이 어쩌고, 해운대 가보고 싶다느니 제주도 가보고 싶다는 둥 완전 한국문화 신봉자가 되어 버렸다. 넷플릭스 덕분에.

 '조선학교'를 졸업하고, 북한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 온 아끼꼬 상이 이렇게 순식간에 대한민국으로 전향(?)해 버리다니 어이가 없다. 변화속도가 너무 빠른 것 아닌가?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 계기가 [한국 드라마] 이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넷플릭스] 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차원에서 [넷플릭스] 사장에게 감사패 라도 하나 만들어서 줘야된다. 자본주의로 똘똘 뭉친 [넷플릭스] 와 [K-드라마] 가 의도치 않은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나비 효과도 이런 나비 효과가 있나?

 순식간에 아끼꼬 상의 삶을 뒤흔들어 통째로 바꿔버린 건, [K-드라마] 의 힘이다. 문화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줄 김구는 어떻게 알고 [문화강국] 을 주장 했을까? 대단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오늘도 아끼꼬 상은, 빨갛게 충혈된 눈과 함께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출근 하며 나에게 물었다.

"너, 김사부 알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