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의미의 재해석 - [ 에세이 ]

* 처음 일본에 와서 크리스마스를 맞이 했을 때,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 즉 빨간 날이었는데, 일본은 그냥 평일 이었습니다. 달력에 그저 다른 날과 다름 없이 25일이 검은 색으로 되어 있는 모습이 약간 생소하고 의아했습니다. 

'아니 그럼, 크리스마스에 보통 다들 출근 한다는 소리인가? 크리스마스는 기본적으로, 일요일 같은 공휴일 아니었어?'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직장인들은 모두 출근을 합니다. 일반적인 평일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개호시설은 보통 출근하는 날과 쉬는 날이 벽에 걸려있는 달력에 근거하여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자체적으로 근무표에 의해 결정되기에 저도 물론 크리스마스에 출근을 했습니다. 하지만 왠지 공휴일이 아니라니 생소하고, 쉬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에 우리나라처럼 크리스마스 행사를 안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기업들은 여러가지 행사도 하고, 세일도 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합니다. 텔레비전에서도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여러가지 기념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개호시설에서도 크리스마스 행사를 기획해서 기념합니다.

'아니, 일본사회도 크리스마스를 전체적으로 기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특별한 날이라 생각한다면, 그냥 공휴일을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년 전 크리스마스의 때에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내가 근무하는 개호시설에서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며칠 전 부터 파티를 기획하고 크리스마스 당일 날에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크리스마스 파티라고 해서 대단히 거창한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호시설 내에서 노인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누구나 왠지 마음이 따뜻해 지고 즐거워지는 크리스마스 이니까.

 크리스마스의 며칠 전부터 개호시설은 크리스마스의 파티 준비로 분주하다. 노인분들과 직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벽과 천장에 붙일 크리스마스 장식을 만들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 하기도 한다. 노인분들은 그들의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카드를 정성껏 쓰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의 전날까지 직원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한 노인분들이 외롭지 않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입해서 정성껏 포장을 해 둔다. 그리고 시설이 위치한 동네에 있는 작은 빵집에 크리스마스 기념 케이크를 주문해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의 당일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시설내에 하루종일 틀어두며 즐거운 분위기가 유지되도록 나름대로 직원들은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파티에는 빠지면 섭섭한 여러가지 음식을 준비하고, 치킨도 멋스럽게 준비해 두며 며칠 전에 주문해 두었던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멋지게 테이블에 셋팅 해둔다. 

 크리스마스파티 때에는 산타복장과 루돌프 복장이 빠지면 섭섭하지. 물론 그 역할은 직원 몫이다. 직원 모두 산타와 루돌프 복장을 한 채로 크리스마스 파티를 진행 한다. 어르신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우리 개호시설 이용자 노인분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은 '빙고 게임' 시간이다. 로또의 기계의 축소판 같은 숫자 당첨기기를 구입하여, 빙고를 빨리 완성시키는 이용자 들에게 선물을 전달 하는 것이 크리스마스 파티의 하이라이트 라고 할 수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선물을 받으시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게임에 참여하시고 열정을 다하신다. 그리고 모든 분들은 결국 선물을 하나 이상씩 받으시고 행복해 하신다. 만약 빙고를 완성시키지 못하면 선물이 없느냐? 그럴 리가 있을까. 이용자 분들이 빙고를 완성 시켜 선물을 받으시도록, 게임을 반 조작(?) 하여 모두가 선물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인지증을 가지신 분들이신데, 보통의 사람들 처럼 게임을 진행하면 아무도 선물을 못 받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지 못한다면, 즐거운 크리스마스 파티가 될 수 없지.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모두가 둘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크리스마스 파티를 마무리 한다. 이것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일본의 개호시설에서의 크리스마스 파티 인 것이다. 

 '아니 이렇게 할 거 다 하고, 챙길 거 다 챙기는 분위기 이면서, 왜 여기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 아닌거지?'

라는 생각을 혼자 하기도 했다. 


 12월 25일의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1월 1일 새해의 첫날도 지났다. 

 일본은 설날을 신정, 즉 1월 1일로 지낸다. 1월 1일을 正月(정월의 한자 표기이다. 한국과 같다.) 이라고 하며 [쇼가츠] 라고 부른다. 쇼가츠 때 일본은 명절음식을 잘 차려서 특별한 식사를 한다. 한마디로 설 음식을 잘 차려서 먹는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 하구나 생각했다. 

 정월 이후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개호시설의 [안나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나 할머니]는 93세의 일본인 할머니이다. 요개호 1 등급 이시지만, 굉장히 건강하신 분이다. 안나 할머니는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신다.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 하루 일과 이며 취미이신 분이시다. 90년 이상을 살아 오신 분 답게, 전혀 알지 못했던 옛날 시대의 이야기들을 안나 할머니께 많이 듣는다.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말해 주시기도 하시고, 전쟁의 시대를 지나 지나 오시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한다. 즐거웠던 기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모두 당신의 인생 인 것이다. 

"정월(1월 1일)에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참 즐거웠어. 크리스마스 파티도 참 즐거웠어.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참 맛있었단다. 그렇지?"

"네. 맞아요. 크리스마스 케이크 정말 맛있었어요. 안나 할머니는 그 때, 빙고게임을 잘 하셔서, 선물도 많이 받으시지 않으셨어요? 맞죠?"

"맞아. 선물도 많이 받았지. 선물을 받고 어딘가에 두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 어딘가 있겠지"

 안나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안나 할머니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어떠했는지 한 번 여쭤보기로 하였다.

 일본의 개호직의 현장에서는 [회상법] 이라는 대화법을 자주 사용한다. 대단히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대화법은 아니다. 그저 상대방 어르신의 과거를 회상하도록 의도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일본 개호현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회상법] 인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여 기억을 이끌어내는 작용을 통해 뇌 운동을 활성화 시켜 기억장애의 속도를 늦추고 더 나아가 인지증(치매)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목표이다. 실제로 그러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일본개호현장에서는 받아들이고 있으며, 어르신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대화법 인 것이다.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효과도 물론 있다. 거의 무표정으로 생활 하시던 노인들의 표정이, 이 대화법을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과거를 떠올리게 유도할 때면, 활기를 띠며 대화를 주도해 나가시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이러한 표정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회상법] 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상법]의 대화법을 통하여, 안나 할머니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기억해 내며 활기를 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안나 할머니, 어릴 적의 크리스마스는 어땠어요? 참,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지는 물론 알고 계시죠?"

라며, 안나 할머니가 기억을 되살리며 대화를 하실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할머니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버리는 것을 느껴버렸다.

"크리스마스는 말이지, 아메리카의 설날 이란다"

"??? 네??? 아메리카의 설날 이요? (미국의 설날 이라고? 갑자기 뭔 소리를 하시는 거야?)"

그리고 이 황당한 답변에 추가로 안나 할머니에게 질문을 했다.

"음,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누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 아닌가요?"

"아니야, 너가 어려서 뭘 잘 몰라서 그런단다. 크리스마스는 아메리카의 설날 이란다"

"그래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 인데요. 그렇다면, 아메리카의 설날인데, 왜 일본사람들이 기념하고 있는 거죠? 일본에는 1월 1일 정월이 따로 있는데요?"

"그건 말이지, 괴로운 일본의 역사 있단다. 너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 너가 태어나기 전에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했단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일본은 지고 말았지"

"아, 그런가요?"

"그 때, 일본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미국은 일본에게 자신들의 설날을 일본사람들도 기념하도록 강요 했지. 그 때 부터 일본은 설날을 두 번 기념하게 되었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정월이 그 두 날이, 일본의 설날이 된거야"

"... ?... (뭔가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있어)"

그리고 나는 다시 안나 할머니께 질문을 던졌다.

"그런가요? 미국으로부터 억지로 강요 받았다면, 일본 사람들은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인가요? 모르는 척 하고 무시하면 될 것 같은데요? 미국 사람들이 직접 와서 확인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때는 말이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단다. 그 때는 굉장히 힘들었던 시절 이었지. 너는 어려서 이해할 수 없을 것이야"

"...?... (그게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나는 다시 안나 할머니에게 질문을 했다.

"아니 안나 할머니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한다면, 일본사람들은 더욱 더 크리스마스를 무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듣고 보니 별로 좋은 날도 아닌 것 같은데. 일본하고 전혀 관계도 없는 날이네~"

라고 할머니에게 이야기 하며,

"지난 크리스마스 때, 우리들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즐겁게 시간을 보냈을까나?" 

라고 안나 할머니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시끄럽고, 어쨌든 그 때부터 일본은 미국의 설날을 기념 하기로 한 거야. 잘 기억해 두렴"

"그렇습니까? 저는 그 이야기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야기 입니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궁금한 것이 있는데, 크리스마스 때 항상 등장 하는 산타할아버지는 누구죠?"

"그것은 아메리카 사람이다"

'... (아닌데요) ... '

"그렇다면, 루돌프 사슴은요? 그건 뭐죠?"

"그건 나도 잘 몰라. 아마도 아메리카 인들이 집에서 키우는 동물인 것 같아"

'... (설마요) ...'

"저는 크리스마스가 아기예수가 태어난 날로 지금 까지 알고 있었습니다만"

"누구?"

"예수"

"뭐야 그게?"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사람이요"

"몰라 그런 사람. 어쨌든 간에 크리스마스는 아메리카의 설날 이란다"

"쩝... 알겠습니다"

 뭐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모르겠다. 크리스마스가 내 생일도 아니고. 아마도 아기예수님이 하늘에서 이 대화를  듣게 되시면, 기가 막혀서 통곡을 하실지도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그날의 [회상법] 은 효과가 있었을라나? 아무 의미 없었을라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