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해진 생명의 불씨가, 마지막으로 힘차게 타오르던 '단 하루' - [ 에세이 ]

 * 적지 않은 개호분야의 경력에도, 그 날의 일은 특별했습니다. 그 날 이전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단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은, 그 이후부터 오늘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날 이었습니다. 그 날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파킨슨 병이란?

 파킨슨 병은 노년기에 발생하는 병이다.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의 생산감소로 인해 발병하는 병이다. 파킨슨 병은 인지증이 아니다. 하지만 파킨슨 병은 인지증을 동반하며, 인지증의 증상과 흡사한 증상을 발생시킨다. 

 다시 말하면, 인지증이 있다고 모두 파킨슨 병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킨슨 병이 발병하면 인지증을 동반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는 것이다. 

  파킨슨 병의 특징은, 근육이 마치 굳어버린 것 처럼 단단해져 원활하게 근육을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걷는 것이 굉장히 불편하며, 종종걸음을 걷는 모습을 보인다. 자세를 잡고 앉아 있는 것도 불안정하여 누군가 옆에서 지지를 해 주어야 한다. 

 또한 가만히 앉아 있음에도 손 떨림 증상이 보이기도 하며, 음식을 숟가락으로 자연스럽게 떠서 섭취하는 것이 힘들며, 점점 더 그 상황이 심해진다. 근육의 불안정한 상태로 음식을 식도로 넘기는 것조차 매우 조심해야 하는 것이 파킨슨 병의 증상이다.



 95세의 [로 할머니] 는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 오신 중국 사람이었다. 파킨슨 병을 앓았던 병력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인지증도 함께 발생해 버린 분이셨다. 처음 우리 시설로 입소 하셨을 때 만 해도, 주위의 도움이 약간 필요한 수준 이었다. 스스로 걸을 수는 있었지만, 곁에서 살짝만 도우면 되는 상태 이셨다. 식사를 하실 때에도 약간의 도움만 드린다면, 스스로 식사를 하실 수 있었고, 화장실을 가실 때에도 아주 약간만 곁에서 도와 드린다면, 스스로 배변이 가능한 상태 이셨다.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었을 때에도, 눈을 마주치며 아주 작은 반응이지만, 반응을 보이시며 간단한 대답을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를 수록, 약간의 거리도 스스로 걷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셨다. 식사도 모든 반찬을 잘게 잘라서 드려야 했고, 그렇지 않았을 경우 식도에서 음식이 계속 걸려 호흡곤란이 생기셨다. 화장실을 갈 때에도 항상 주위에서 거의 붙어있는 수준으로 도움을 드릴 수 밖에 없는 상태로 증상이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옆에서 말을 걸어도 전혀 듣고 계시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본인의 정면 혹은 허공을 바라보고 계시게 되었고, 대답은 물론이고 반응조차 보이지 않으셨다. 

 [로 할머니]의 존재가,아무 감정 없는 인형 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본능적인 움직임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로 할머니는 내가 보이기는 하시는 것일까? 사람의 형상을 가진 인형을 조심히 움직이게 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손을 잡아 이끌면 허공을 보시며 따라오시고, 내가 움직임을 멈추면 허공을 보고 계신 상태로 움직임을 멈추는 그런 행위가 매일 반복될 뿐이었다.

 시간이 갈 수록 그러한 상태로 증세가 악화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인간의 노화 진행 순서인 것인가? 라는 서글픈 생각을 하며, [로 할머니] 를 곁에서 돌보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 돌아가셔 버린다고 하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상태가 연일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 날'은 갑자기 찾아왔다.

 이른 아침, 나는 모두가 일어날 시간에 [로 할머니] 의 방에 들어가 평소처럼 이름을 부르며 깨웠다. 물론 반응이 없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 전에 반응이 있으셨던 [로 할머니]를 생각하며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매일 그렇게 행동하며 말을 걸어왔었다.

"로 할머니, 좋은 아침이에요. 일어나세요. 아침 식사 하실 시간이에요" 

라고 말하며 커튼을 걷고, 옆방으로 가서 다른 할머니를 깨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방문을 나서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하요 고자이마스" - [ 좋은 아침이야 ] 

"...???...(응 방금 누구 목소리???)..!!!"

 나는 번개처럼 뒤를 돌아보며, 로 할머니를 향해 말을 했다.

"지금, 로 할머니가 말한 건가요?"

"물론이지, 좋은 아침이야"

"엥?? 갑자기?? 갑자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엥?? 이게 뭔일이래?? 로 할머니, 내가 누군지 알아 보겠어요?"

"물론이지, 매일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직원 아닌가"

"엥? 매일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을 할머니는 알고 있는 건가요?"

"호,호,호, 그럼 물론이지. 일단, 내 손 좀 잡아 당겨봐. 침대에서 일어나게"

"네?? 침대에서 일어나신다구요? 일어나실 수 있겠어요?"

 내가 손을 잡아 당기자, 정말로 침대에서 일어나서 똑바로 앉으셨다. 이상하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온 몸의 근육이 굳어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이렇게 근육이 움직인다고? 물론, 완전히 자유자재로 근육이 움직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손을 잡아 끌었을 때, 스스로 힘을 주어 침대에 걸터앉는 것 자체로 내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정도로 전 날과 다른 움직임을 [로 할머니]가 나에게 보였던 것이다.

 팔 목을 약간 부축 한 채로, 거실로 나왔다. 걸음걸이가 한결 부드러워진 상태 였다.

 아니, 이게 의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물론 나는 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 그냥 든 생각이었다.

 무슨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상황 처럼 느껴졌다. 냉동인간이 깨어난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로 할머니는 하루 아침에, 완전히 건강한 젊은 시절의 움직임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있나?

 로 할머니는 거실에 앉아서, 출근 하는 직원들을 향해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원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고, 기절할 듯한 반응을 보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외쳤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그날, 직원 모두를 향해, [로 할머니] 는 본인을 항상 돌봐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평범하고 건강한 할머니처럼 그 '단 하루' 를 온전히 사셨다. 식사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하셨으며, 먹는 데에도 전혀 지장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과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에 당신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충분히 표시하셨다. 간혹 농담도 하시며, 모두와 즐거운 하루를 보내셨다.

 시설장은 [로 할머니] 의 아들들에게 연락하여, 이해할 수 없지만 [로 할머니] 가 갑자기 건강한 상태가 되셨으니 와서 어머니를 만나보시는 것이 어떤지 연락을 하였다. 직원들의 생각은, 아들들이 당장 달려올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렇지 않았다. 며칠 뒤에 시간이 있으면 가겠다는 말만 남겼을 뿐이다. 개호시설에 근무하면 이렇게 씁쓸한 일도 적지 않게 있다. (아들은 끝내 오지 않았고, 그가 말했던 며칠 뒤에도 오지 않았다. 결국 몇 달 뒤 로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실 때 시설로 왔다. 씁쓸하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이 개호시설에서는 자주 보게 된다)

 나는 그 날 퇴근하면서,

"로 할머니, 내일 날씨가 맑으면  함께 외출해요. 공원에 꽃을 보러 가도 좋고, 쇼핑도 좋으니 함께 외출해요"

라며, 로 할머니에게 말했고, 로 할머니도,

"그래, 그 것 참 좋은 생각 이네. 같이 외출하자"

라고 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약속을 한 후 나는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발걸음도 가볍게 출근 한 후, [로 할머니] 의 방에 들어가서

"좋은 아침이에요, 할머니 일어나세요"

라고 말했을 때,

할머니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이틀 전, 굉장히 중증인 상태로 되돌아 가버린 듯한 모습 이셨다. 그러한 상태의 [로 할머니]는, 나에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신 채, 초점없는 눈동자로 천장을 바라보고 계실 뿐이었다.

 나는 그 것 또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마치 어제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건강하셨던 어제가 마지막으로 힘차게 생명의 에너지를 쏟아내신 '단 하루' 였던 것인가?

 우리에게 감사인사를 하기 위하여, 마지막으로 에너지를 쏟아내신 것인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 할머니] 의 건강상태는 일반 개호시설에서 개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버리셨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을 하시며, 우리 시설을 퇴소 하게 되셨다. 구급차에 실려 시설을 떠나시는 [로 할머니] 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운을 내서 나에게 [고맙다] 는 이야기를 직접 해주신 [로 할머니] 가, 도리어 내가 너무 고마웠다.

 [로 할머니] 의 희미해진 삶의 불씨가, 마지막으로 타오르던 '단 하루' 의 고마운 추억은, 아직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