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을 기억하고 있는, 재일교포 송 할머니의 이야기
*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일본의 개호시설에는 한국 할머니가 몇 분 계십니다. 송 할머니는 일본인 남편을 만나 일본에 와서 평생을 살아 오신 할머니 이십니다. 이제는 인지증(치매)가 심해져 과거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들 만이 남아 있지만, 비록 예전의 추억 들이지만 당신의 가족들에 대한 기억은 뚜렷이 기억하고 있는 분 이십니다. 주로 한국어를 사용 하시며, 상대방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을 때만 일본어를 사용하십니다.
강 할머니는 9살에 일본으로 오셔 평생을 이 곳에서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너무 어릴 적이며,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한국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십니다. 그저 본인의 고향 정도만 아주 어렴풋이 기억하고 계시는 분 이십니다. 언젠가 당신의 고향을 여쭈어 보았을 때 "갱상도 에서 왔어요"라며 대답을 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경상도의 어디인지 여쭈어 봤으나, 정확한 기억이 안 나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거의 100년을 가까이 일본에서 사셨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강 할머니는 한국어 보다 일본어가 더 편하신 분이십니다. 주로 일본어를 사용 하시지만, 제가 한국어로 말을 걸어 드릴 때에면 얼굴이 밝아지시며 최선을 다해 한국어로 대답을 해주십니다. 기억을 더듬어 가시며 한국어를 사용 하시다 한국어가 막히실 때면, "아고 마, 나 모리겠다~ 다 잊아 뿟다~" 라고 말씀 하신 후에, 일본어로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가십니다.
이 분들을 위해서 저를 비롯한 일본인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이 분들의 남은 여생을 돕고 있습니다. 최근 식욕이 없어지신 송 할머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적어 나가며, 혹시 그와 관계된 이야기들이 있을 경우 함께 이야기들을 해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송 할머니는 인지증으로 인하여 기억장애가 있으시다. 송 할머니의 기억 속에는 아주 오랜 과거의 기억들 만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며, 수년 동안 매일 반복적으로 만난 사람들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의 송 할머니의 두드러진 특징은, 식욕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식사를 잘 하셨던 모습 이었지만, 언젠가 부터 식사를 계속 거부하신다. 여기 이 곳, 개호시설에서 매일 동일한 사람을 개호하고 있노라면, 생활상태의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매일 이용자의 상태를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한 달 전의 기록, 반 년 전의 기록을 다시 살펴볼 때 차이가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이 식욕이 없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들도 간혹 특별한 이유 없이 식욕이 없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송 할머니가 간혹 한 두 번씩 식욕이 없는 경우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이 상태가 지속이 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송 할머니의 담당의사로부터 영양식을 처방받아 송 할머니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개호시설에는 이용자에 따라 담당의사가 있다. 주치의 다. 그저 글자로만 알고 있었던 주치의(主治医)의 왕진(往診) 시스템은 일본에서는 아직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반드시 일주일에 한 번씩 본인의 담당 환자(이용자 노인)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개호시설로 방문한다. 이런 것이 [개호시설과 지역 의료기관과의 연계]가 아닐까.
담당의사의 처방으로 송 할머니 께는 영양음료가 처방 되었다. 일본은 영양음료 중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것들이 있다. 송 할머니의 경우에는 '생활 보호 대상자'이기 때문에 비용이 발생되지 않는다. 사실상 공짜라는 의미이다. 여러가지로 일본의 개호 시스템은 대단하다. 송 할머니가 처방 받은 영양음료는 [엔슈아] 라는 영양음료이다. 캔에 담긴 제품이다. 이 영양음료는 일본의 노인 시설에서 흔하게 사용하며, 보통 의사의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구입한다.
송 할머니의 식사는 [엔슈아]와 [일반 식사]를 함께 제공한다. 그러나 최근엔 거의 매 끼니의 식사를 거부 하시며,
"아니, 왜 조금 전에 밥을 먹었는데, 또 먹으라고 하는 거야! 나를 죽이 려고 하는 거야?"
라며 한국어로 화를 내신다.
이와 정반대로 강 할머니는, 식사 시간에, 송 할머니와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이신다. 식사를 하셨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며, 계속 밥을 달라고 하신다. 식사 중에도 밥을 몇 그릇 드셨는지 기억을 못하시는 할머니 이시다. 식사 중에 나와 눈이 마주치면, 항상 빈 밥그릇을 나에게 보이시며,
"오까와리!"
라고 외치신다. [오까와리] 는 일본어이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밥 한그릇 더 줘]라는 의미가 있다. 항상 밥을 두 그릇을 드셔야 스스로 만족하시는 분이시다. 문제는, 본인이 밥을 두 그릇 째 드시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신다 의미이다. 그래서, 항상 밥을 더 달라고 하시며 [오까와리] 를 외치신다. 강 할머니에게는 식사량 조절이 필요하다. 포만감을 못 느끼시는 건지, 기억을 못하시는 건지, 식사량이 원래 많으신 것인지, 여러가지 것들이 교차되는 그 어느 지점에, 강 할머니의 왕성한 식욕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송 할머니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최근 전혀 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거부 하시는 송 할머니를 위해서 나는 한국식으로 불고기를 만들었다. 그 날 오전, 시설장은 나에게 한국의 요리라면 혹시 송할머니가 드실 지도 모르니 한 번 신경 써서 만들어 보라고 나에게 요청을 했다. 나는 그 요청을 듣고, 인터넷 레시피를 열심히 찾아, 저녁 식사 메뉴로 불고기를 만들어 송 할머니에게 드렸다.
"송 할머니, 할머니가 좋아하는 한국식 불고기를 만들었어요. 한 번 드셔보세요"
그러나 송 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식사를 거부하셨다. 음식의 메뉴가 문제가 아닌 듯 했다. 한국 음식도 전혀 입에 대지 않으셨다.
다시 한 번 식사를 송 할머니께 권했을 때, 할머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조금 이따가 집에 가서 밥을 먹으니까 여기서 먹지 않아도 괜찮아. 집에서 먹을게"
라며 나에게 대답을 하셨다.
현재, 송 할머니는 돌아갈 자택이 없다. 몇 년 전부터 노인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인지증(치매)로 인하여 본인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시고 계시며, 기억장애로 인하여 최근 몇 년간 본인에게 생긴 변화를 전혀 인지하고 계시지 못한다. 송 할머니는 남편과 생활하시다 남편을 사별하고 혼자 생활 하시던 중에 인지증이 생겨서 개호시설로 입소하신 분이다. 슬하에 자녀도 없다. 그래서 송 할머니는 돌아갈 집이 없으신 것이다.
나는 다시 송 할머니에게 기준을 맞추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할머니, 여기서 식사를 조금 하시고 난 후에 집에 가셔서 식사를 더 하시는 것은 어떠세요?"
라며, 상황에 맞추어 대화를 하며 식사를 권해 보았다.
송 할머니는 굉장히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며, 본인이 밥을 거부하는 이유를 천천히 말씀하셨다.
"우리 어머니가요, 어머니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빨리 집에 가야되요.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밥을 해놓고, 저녁식사를 준비 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밥을 먹어 버리고 집에 돌아가면, 어머니가 난처해 하실 거에요. 내가 밖에서 밥을 먹고 집에 돌아왔다는 것을 어머니가 아시면, 우리 어머니가 슬퍼할지도 몰라요. 미안해요. 나는 여기서 밥을 먹으면 안되요"
라며 천천히 이야기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거구나. 그래서 계속 밥을 거부 하셨던 거구나. 이런 가슴아픈 이유가 있을 수가 있나. 비록 망상이라고 할지라도, 비록 인지증으로 인하여 기억이 이리저리 뒤섞여 버렸다고 할지라도 너무 슬픈 이유를 송 할머니는 나에게 하셨다.
송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굳어져 버린 나를 보며, 옆에 있던 일본인 시설장과 일본인 직원들이 나에게 물어왔다. 송 할머니가 조금 전에 한국말로 너에게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해 했다. 나는 일본어로 그 내용을 직원들에게 통역해 주었고, 그 뒤 그 자리에 있던 직원들 모두가 나처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그저 슬픈 표정만 짓고 있었다.
송 할머니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줄, 우리들 중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나 가슴 아픈 이유가 있을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인지증(치매)로 인한 기억장애로, 아직도 어머니가 살아계시고 당신의 집에서 당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하고 있다니.
90세를 훌쩍 넘긴 연세의 송 할머니 당신은, 아직도 어머니와 함께 살고 계시는 중 이신 것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계신 것이었다. 너무 슬퍼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송 할머니가 식사를 거부하는 이유가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라니. 내가 눈물이 다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인지증 이지만, 아마도 [어머니]라는 존재와 [어머니와의 추억], 그리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 밥상]은 한국 사람의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것임이 확실하다.
식사를 하시고 계시던, 강 할머니와 식사를 돕던 직원들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슬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침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다가 식사를 잠시 멈추고 침묵을 지키고 계신 강 할머니가 나와 눈이 마추쳤다. 나는 순간,
'강 할머니도 지금까지의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당신도 어머니의 생각에 차마 식사를 하지 못하고 계신 것인가요?'
라는 소리없는 질문을 강 할머니에게 드리며 조용히 눈을 마추치기만 했다.
그런 나를 향해서 강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며 크게 한 마디를 외치셨다.
"오까와리~!!" - [밥 한그릇 더 줘~!!]
"??? 엥 ??? 네 ???"
순간, 나와 다른 직원들의 눈물이 쏙 들어가버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