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으로 의심받고, 조선 시대 욕을 한 바가지 얻어 듣게 된 사건 - [ 에세이 ]
* 우리가 흔히 치매라고 부르는 노인 질환은, 일본에서 인지증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인지증은 여러가지 대표적인 증상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기억장애 입니다. 기억장애의 진행은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기억장애로 시작하여, 비교적 오래된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장기기억장애로 점차 진행 해 나갑니다. 그리고 또 다른 증상으로 '망상' 이 있습니다. 인지증을 가지고 있는 노인들의 모두가 이 증상이 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개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을 케어 할 때, 적지 않게 보이는 증상입니다.
망상이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일어났다고 실제로 믿거나,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없습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 들기도 하고 혼합하여 생각하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이 '망상'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적어 내려 가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이 중심에서 벗어나도 이해 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질 수도 있는 글이지만, 현재의 내 생각을 가감없이 적는 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일본에 와서 100세가 넘게 장수 하는 사람들을 처음 접했다. 일본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는 100세 이상장수 하시는 분들을 본 적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것은 나에게 조금 거리감이 있었다. 실제로 내가 직접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내가 현재 일 하고 있는 일본의 개호시설에서, 100세 이상 장수 하신 분들을 지금 까지 네다섯분 정도 뵌 것 같다. 100세 이상의 나이를 들었을 때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넘어서서 신기한 생각까지 든다. 어떻게 이렇게 장수 할 수 있는지 궁금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100세 시대' 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이미 평범한 단어인 것 처럼 느껴진다. 내 주위에서만 이렇게나 종종 보이는데, 일본 전체를 생각하면, 이미 일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장수 할 수 있을까? 식습관의 결과인가?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의 유전자가 다른 것인가? 아니면,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인가?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딱히 일본 사람들이 운동을 좋아하지도,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운동은 오히려 한국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운동은 아닌 것 같고, 아직 잘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일본에는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금례 할머니는 재일교포 1세 이시다. 그리고 올해 101세 이신 할머니이다. 내가 일 하고 있는 개호시설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102세 라니. 정말 신기하다 못해 어이가 없다. 한국이라면, 텔레비전에 나올 연세 이시다. 100년이면 한 세기인데, 이 분은 20세기에서 21세기를 넘어 오면서 당신의 삶을 살아오셨다. 그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일본 사람들도 장수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에 터를 잡고 살아오신 재일교포 어르신 들도 장수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일본인의 유전자의 영향은 아닌 것 같다.
정금례 할머니는, 내 기준으로는 건강 하시다. 그러나 현재 인지증이 있으시다. 인지증으로 인하여 가족들이 너무 힘들어 했었고, 그 자녀들도 이제는 본인의 어머니를 케어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으시다. 가족 중 큰 딸이 80세이다. 어떻게 어머니를 케어 하겠는가. 본인의 몸을 지탱하는 것도 힘든 나이이다. 어떻게 그 연세에 어머니를 케어 할 수 있겠는가. 그 분도 당장 개호시설에 입소 하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연세 이시다. 정금례 할머니의 자녀들도, 그들의 자녀에게 케어 를 받아야 할 연세 이시다. 그래서 정금자 할머니는 우리 시설로 입소하여 생활하고 계신다.
우스겟 소리지만, 내가 일 하는 곳에서는 80세 이하의 노인은 아직 젊은이 느낌이다. 80세 부터는 평범한 노인이며, 90세 이상이 되어야 이 곳에서는 노인이구나 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나의 생각이 아니라, 여기에 계시는 노인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신다.
정금례 할머니는 본인이 15세에 일본에 오셨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시모노세키 항까지 오셨다고 하셨다. 시모노세키 가 어디인지 일본인 직원에게 물으니, 일본의 북서쪽에 있다고 했다. 아마 100년 전에, 해외로 갈 때 배를 타고 이동 했었어야 하니 그 때 번성 했던 항구가 아닌가 싶다. 정금례 할머니가 이야기를 꺼내는 하나 하나가 모두 신기한 과거의 이야기들 뿐이었다.
거의 90년 전에 일본에 오셨고, 지금이 2023년 이니, 대략 1930년 인 것인가? 그 때라면, 일제시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름이 조선 이었던 때 아닌가? 세상에, 그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 오신 것인가? 조선시대 때, 고향을 떠나 일본에서 평생을 사셨으니, 정금례 할머니는 조선 사람 이시다. 정금례 할머니가 사용하시는 언어는 조선말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정금례 할머니가 사용하시는 단어들이 현재에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을 사용하신다. 내가 그 단어들을 실제로 들었을 때, 나도 신기했다. 내가 이 단어를 어디서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라며 생각을 했다. 아마,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들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들었을까? 평상시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단어 들 이기에 어디에서 들었는지 조차 정확하지 않다.
이야기가 조금 비껴 가지만, 일본에서 장수하고 계시는 노인 분들은, 당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표현 하실 때, [센소노 또끼] 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센소노 또끼 에는 말이야, 너무 힘들었어. 정말 먹을 것도 없었어"
라는 말을 많이 하신다.
[센소노 또끼]란, 일본 한자로 [戦争の時] 라고 적으며, 우리 말로 번역을 하면,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 라는 의미이다. 그 시기는 일본에 있는 노인들에게 있어, 평생 지울 수 없는 고난의 시기 였던 것 같다. 그 시기는, 우리 기준으로 보는 '한국전쟁'이 아니라, 일본의 기준으로 보는 '태평양 전쟁'의 시기가 시작할 때 부터 그 이후 얼마간의 시기를 이야기 하는 것 같았다.
그 시기에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완전히 망해서, 오늘 하루 먹을 것도 없었다고 하셨다. 국가간의 정치적인 문제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를 겨냥한 일본의 제국주의 사상까지, 가난한 일반 시민들이 알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며,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일본의 할머니들이 기억하는 [전재의 시기] 는 그저 본인과 본인 가족들이 먹을 식량이 부족했으며, 본인의 자식들에게 먹일 쌀이 없었어 힘들었던 고난의 시기 였었다는 것을 기억할 뿐이었다.
다시 정금례 할머니의 이야기. 이 할머니가 가장 즐겨 보시는 텔레비전 방송은 음악방송이다. 그 방송의 이름은 [年を忘れ歌] 다.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해 보자면, [나이를 잊는 노래] 정도가 되려나. 방송의 컨셉은 주로 어린 학생들과 젊은 층을 겨냥한 방송이 아니며,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겨냥한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예전에 일본에서 유행했었던 듯한 노래, 트로트의 종류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이 방송이 정금자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방송이다. 시설의 거실에서 이 방송을 시청 하시며, 박수도 치시며, 웃기도 하시고, 가끔 텔레비전을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하시며 이 방송을 시청하신다.
이 음악방송을 녹화해 둔 DVD 있다. (일본은 아직도 DVD 를 사용한다) 정금례 할머니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으시면, 내가 그 녹화된 방송을 거실 텔레비전을 틀어 두어 할머니께서 시청 하시도록 한다.
이 음악방송의 사회자는 일본의 남자 아나운서이다. 아주 키가 크고 잘생긴 느낌의 아나운서이다. 한국의 미남형 아나운서와 또 다른 느낌이다.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방송진행 하는 것을 보면 노인들의 반응을 잘 이끌어 내는 것 같다. 정금례 할머니는, 그 잘 생긴 아나운서의 진행에 맞추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시며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내신다.
음악 방송을 보며 행복해 하시는 정금례 할머니, 방송을 보시는 순간 만큼 102세의 나이를 잊어버리시고 어린 소녀가 되어 이 음악 방송을 시청 하신다. 방송의 타이틀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저녁 나에게 정금례 할머니와 나 사이에 사건이 하나 생겼다.
야간 근무를 하기 위해 저녁 5시 경 개호시설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사무를 처리하고 있던 때에, 거실에 앉아 계시던 정금례 할머니와 눈이 몇 번 마주쳤다. 가볍게 인사를 드리며 내 할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야간 근무는 보통 혼자서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일이 은근히 많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다시 흐른 뒤에 정금례 할머니와 눈이 다시 마주쳤다. 그 순간, 정금례 할머니가 나에게 한국어로 욕을 하시기 시작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정금례 할머니는 보통 일본어를 사용하신다. 갑자기 한국어를 말씀하시는 것도 놀랐지만, 나에게 한국어로 욕을 하시는 것에도 깜짝 놀랐다.
"이 도둑ㄴ아~!!!" (여자를 향해 할 때 하는 욕이었다)
'??? 설마 나에게 하시는 욕인가? 뭐지? 갑자기?'
라는 생각을 하며, 정금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향한 욕은 계속 이어졌다.
"이 도둑ㄴ아, 너 내 물건 가져갔지?"
"네??? 무슨 물건이요? 어떤 물건을 말씀 하시는 거예요 할머니?"
나도 한국어로 대답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앞 뒤 설명도 없이, 나를 보며 욕을 계속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 도둑ㄴ이 내 물건을 어디다가 숨겨놓고 있어? 빨리 가져와!"
라고 소리를 지르시며 욕을 계속 이어나가시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나는 정금례 할머니가 욕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깜짝 놀랐다. 갑자기 한국어로 욕을 하시는 것도 놀랐지만, 나를 향한 욕 이라는 것에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왜 욕을 하시는 지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나를 향한 욕설은 계속 되었다.
정금례 할머니의 욕은 정말 굉장했다. 한국어로 욕을 하시는데, 내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욕을 하셨다. 어디에 서 들어보았을까? 어딘가에서 들어 본 옛날 말들을 섞어 가시며 나에게 욕을 계속 하셨다. 그 때 한글의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글자들을 조합하여 이런 욕설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언어라니. 여러가지 욕을 들었지만 단어가 너무 충격적이라 그 상황에선 그저 놀라기만 했을 뿐, 지금 기억하려고 하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단순하게 숫자 비슷한 발음을 하며 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뭐라고 하셨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 하시며 욕을 했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고전 문학] 교과서에서나 나왔던 예전의 한국말을 사용 하시면서 욕을 하셨다. 처음 듣는 단어들도 많았다.
'아니, 이것이 바로 100여년 전의 한국의 욕이란 말인가? 100여 년 전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이니, 조선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이 욕설 들은, 조선시대 사람이 조선말로 하는 욕인 것이다. 너무 심하다. 충격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대단히 기분이 나빠져버렸다. 사람이, 혀 세치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사실 인 것 같다. 나는 순간 충격을 받아서 머리 속이 백지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만약 상대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나도 같이 욕설로 대응하며 싸울 수 있었겠지만, 상대는 인지증(치매) 이 있는 노인이다. 그리고 102세의 초 고령 이시다. 내가 그 노인에게 욕을 하며 싸우면 내가 뭐가 되겠는가. 그저 할머니가 쏟아내시는 욕을 듣고 있을 수 밖에. 그리고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왜 화가 났는지 조차도 알지 못한다.
한 참을 나에게 화를 내시던 할머니는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스스로 차분해 지셨다. 그리고 한 참 뒤에 나에게 이 전보다는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내 우편물하고 소포 가져와!"
"(응? 우편물? 소포? 갑자기 또 뭔소리야?) 네? 우편물 이요? 어떤 우편물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라며, 나도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할머니는,
"나도 몰라! 너가 가져 갔으니 너가 알겠지!"
"네??? (이 할머니 밑도 끝도 없이 대체 뭔소리를 하시는 거야?)"
그 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정금례 할머니는 화는 아직 나신 상태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우편물' 과 '소포' 에 대해 설명하시기 시작하셨다. 요약하자면,
정금례 할머니는 [나이를 잊게 하는 노래] 방송을 시청 하시며 박수를 열심히 치시고, 가수들을 향해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그 열성적인 모습을 음악방송 속의 남자사회자가 텔레비전 너머에서 본인을 발견하고 선물을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셨단다. 중요한 선물이니 우체국을 통해서 보낼 것인데, 배달은 경찰관이 할 것이라는 설명을 할머니에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물'이 이 곳에 도착을 했는데, 내가 그 '선물'을 중간에서 가로채 가져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가 도둑이라는 의미이다.
망상이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여 있다. 텔레비전 속의 사회자가, 열심히 박수 치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선물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했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있나. 게다가 그 방송은 예전의 녹화방송인데 무슨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인가요 할머니. 화상통화처럼 카메라로 직접 연결된 상황도 아니고 망상도 이런 망상이 있나. 그리고 경찰관이 택배 배달을 한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경찰관이 얼마나 바쁜 사람들인데.
인지증으로 인한 망상이다.
아마도, 내가 있는 개호시설로 도착하는 우편물을 내가 받고 사인한 후에 물건 정리를 하는 모습을 발견 하시고는, 생각이 거기까지 뻗어나가신 것 같다. 나는 할머니가 이해를 못 하실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일단 여러가지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을 드렸다.
"정금례 할머니, 아마 제가 택배를 받는 것을 보신 것 같은데요. 그 물건들은 할머니에게 도착한 물건들이 아니고, 청소용품과 여기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을 받은 거예요. 우체국도 아니에요. 일반 택배회사 입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보시던 음악방송은 녹화방송 이었어요. 그리고 만약 생방송이라고 할지라도, 텔레비전 저 쪽에서 이 쪽이 보이지도 않아요"
라고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을 드렸다. 그러나 내 설명이 할머니의 귀에 들어갈 리가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일단 설명이라도 드린 것이다. 할머니는 다시 얼굴이 점점 상기 되시더니 본인의 방으로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들어가셨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시기 전에 나를 향해 한 번 더 바라 보시더니 한마디를 쏘아 붙이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이 도둑ㄴ아~!!!"
후~~~
집 떠나 먼 타국에 와서,
조선시대에 태어나신 100세가 넘게 살아오신 모국의 할머니로부터
난데없이 조선말로 욕을 한 바가지 얻어 먹고,
나는 도둑ㄴ이 되었다.
아~ 인생 피곤하다 피곤해.
나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