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반복되는 아내의 사망 소식, 매일 반복되는 쇼크
* 인지증의 노인들에게 항상 진실 만을 이야기 해야 할 까요? 상황에 따라 하얀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것 일까요?
인지증의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기억장애] 가 있습니다.
[단기 기억장애]는 최근에 발생한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점심메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고, 점심식사를 했던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기억장애] 는 [단기 기억장애] 에서 [장기 기억장애] 로 까지 증상이 확대 되어 갑니다.
[장기 기억장애]는 오래 전에 본인에게 일어났던 사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지증의 노인들에게 아주 대표적으로 보이는 증상이 [기억장애] 인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노인 시설에서 생활하시는 [기억 장애] 를 가지고 있는 이용자 할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엄마 어디 있니?"
왕씨는 오늘도 같은 질문을 나에게 반복적으로 하신다. 벌써 오늘만 7번째 똑같은 질문이다. 인지증의 영향으로 기억장애를 가지고 있다. 단기기억장애로 인하여 조금 전의 일을 계속 잊어 버리는 상황이다. 왕씨 본인이 나에게 질문했던 상황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다.
왕씨는 2년 전 노인시설로 입소한 중국 국적의 75세의 남성이다. 상하이 출신의 왕씨는 딸부부와 함께 수 년 전 일본에 오셨다. 그리고 그 뒤 몇 년간 딸 부부와 생활을 해 오시다가, 왕씨의 인지증의 증상이 심해져 가족이 옆에서 돌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버렸다. 그 뒤에도 가능한 딸은 본인과 함께 생활을 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상태까지 오고 나서야 개호시설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다.
어느 가정이나 비슷한 과정이다. 가능하다면 본인의 부모를 시설에 맡기고 싶어하지 않는다. 부모에 대한 미안함과 생이별하는 듯한 느낌 그리고 자녀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지 않는다는 죄책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나 중국사람이나 모두가 가지는 감정인 것 같다. 이런 것들을 보면 '사람 사는 곳 다 똑같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왕씨는 단기기억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본인 혹은 본인 주위에 발생하는 새로운 정보를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항상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가끔 어떤 정보는 기억해 내시기도 하신다.
시설 내의 왕씨 본인의 방을 1년 6개월이 넘게 기억하지 못하셨다. 가끔 기억해 내시고 스스로 찾아가시는 경우도 있지만, 본인의 방을 못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지증은 이렇게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 기능을 약하게 만들어 버리고, 뇌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잔혹한 노인성 질환인 것이다.
왕씨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로맨스 영화 이야기를 하나 해 보자.
단지 하루 동안의 일만 기억할 수 있는 여자가 여기 있다. 그 여자의 남자 친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우연을 가장한 채,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와의 첫 만남을 가진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그녀를 데리고 가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데리고 가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이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매일, 멋진 남성을 우연히 만나 첫 데이트를 하며, 왠지 굉장히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에 첫 방문을 하며, 처음 느껴 보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로 부터 처음으로 사랑고백을 받게 된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하루가 매일 반복되는 것이다. 정말 상상만 해도 행복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기억상실] 혹은 [기억장애] 는 로맨틱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에 굉장히 달콤한 소스인 것이다.
자, 이제 영화에서 현실로 돌아와 보자. 기억장애가 있는 사람의 일상은, 영화 처럼 달콤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특히 노인개호시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왕씨가 처음 개호시설에 입소한 날, 저녁식사를 마치고 난 뒤 나에게 물었다.
"엄마 어디 있니?"
왕씨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이 질문을 갑자기 나에게 했었다. 왕씨로부터 이 질문을 내가 처음 들었을 때, '본인의 어머니를 찾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기억장애가 있다는 정보를 이미 들었던 터라, 본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기억 하지 못하는 줄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왕씨와 한참 대화를 나누고, 가족 상담을 진행한 후에 알았다. 그 질문은 본인의 어머니를 찾는 것이 아니고, 아내를 찾는 질문 이었다. 왕씨는 집에서 딸에게, 반복적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고 했다. 즉, 딸에게 묻는 질문을 그대로 나에게 했던 것이었다.
"엄마 어디 있니?"
왕씨의 아내는 수 년전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날 시점에는 왕씨의 인지증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던 상태 였던 것이다. 그리고 왕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버린 상황을 받아 들이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후로도 그 사실을 기억해 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본인의 딸을 향해, 아내를 찾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도 수 십번씩 되풀이 되는 그 질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 어디 있니?"
물론, 딸은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부재에 관하여 수 백, 수 천번 알렸다고 한다. 딸의 입장에서도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텐데, 아버지 마저 인지증으로 인한 기억장애로, 어머니를 매일 찾고 있으니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개호시설에서는 왕씨의 그 질문에 어떻게 답변을 하는 것이 좋을지 딸에게 의견을 물으니,
"집에서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 하고 있으니, 개호시설에서도 평범하게 이야기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라는 의견을 받았다.
그 의견을 듣고, 왕씨로부터 [엄마 어디 있니?] 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평범(?)하게 아내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말하여 하였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본인의 아내를 찾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평범한 감정으로 사망 소식을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엄마는 몸이 아파서 병원에 있다] 라고 이야기 했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대답을 했다.
한동안 그렇게 거짓말로 대답을 해 왔지만, 왠지 왕씨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불편했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라는 불편한 마음에 직원회의 때, 이 상황에 대하여 모든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 하였다. 그리고 왕씨에게 사실대로 이야기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다음날, 시설 내를 배회하던 왕씨는, 나를 보더니 오늘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했다.
"엄마 어디 있니?"
나는 약간 뜸을 들이며 고민을 한 뒤,
"엄마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안 계세요"
라고 사실 그대로 왕씨에게 알렸다. 그러자 왕씨는 깜짝 놀라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더니,
"언제?"
라는 질문을 다시 나에게 했고, 나는
"몇 년 전이라고 따님에게 들었어요. 저도 정확히 잘 몰라요"
라고 대답을 했다.
그렇게 진실에 대하여 답변을 하였더니, 왕씨는 마치 그 사실을 지금 처음 알게 되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털썩 앉으시더니 한숨을 내 쉬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리고 엄청나게 슬픈 표정을 지으시며 연거푸 한숨을 쉬시는 모습과 함께 두 눈은 빨갛게 충혈 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잠시 후, 주먹으로 본인의 다리를 내리 치시는 행동을 보이셨다. 누가 봐도 슬픔을 참아내려고 하는 행동 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어서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해 버렸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왕씨의 표정을 확인 해 보았다. 왕씨는 다시 평범하고 진정된 표정으로 시설 내의 복도를 걸어 다니 시고 계셨다. 나는,
'마음이 조금 진정 되셨나? 아니면 마음을 진정 시키기 위해 노력하시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왕씨는 나를 발견 하더니 질문을 하셨다.
"엄마 어디 있니?"
"...???..."
왕씨는 조금 전의 상황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했다.
'아니, 불과 한 시간 전에 그렇게 슬퍼하며 힘들어 하셨으면서, 이렇게 빨리 그 상황을 잊어버렸다고?'
나는 왕씨에게 한 시간 전의 슬픔을 다시 연속으로 겪게 할 수 없어서, 대답을 피하고 머뭇거렸다. 그 때, 한 시건 전의 상황을 몰랐던 다른 직원이 다가왔다. 왕씨는 그 직원을 향해서,
"엄마 어디 있니?"
라고 물었고, 그 직원은,
"엄마는 병원에 계시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라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한 시간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왕씨는 의자에 털썩 앉아 한숨을 쉬며 눈물을 참아 내는 모습을 보였다. 주먹으로 본인의 무릎을 때리기도 하며, 테이블을 치기도 하며 슬픔을 참아내는 행동을 보였다.
왕씨도 충격을 받았지만, 나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도 왕씨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맞는 것인가? 우리가 진실만을 알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저렇게 힘들어 하는데, 하얀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왕씨에게는, 언제건 아내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는 그 때가, 아내의 죽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는 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을 매일 듣는 다면, 매일 그 슬픔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슬픈 상황인 것인가? 매일 반복되는 아내의 죽음. 그 슬픔을 참아내야만 하는 남편의 모습.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무력한 나와 직원들.
왕씨의 슬픔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나도 왕씨의 슬픔의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 버릴 것만 같았다. 잠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이내 냉정하게 마음을 잡고 근무를 다시 시작했다.
왕씨와 같은 기억장애를 가진 노인들을 향해 우리는 어떻게 대응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한치의 거짓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니면 악의 없는 거짓말 정도는 해도 되는 것인가? 상대방을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나와 직원들은, 이 딜레마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그 뒤, 나는 왕씨로부터
"엄마 어디 있니?"
라는 질문을 듣게 되면,
"몰라요"
라는 대답을 하기로 했다. 그럴 때면, 왕씨는 나에게
"왜 그것도 몰라?"
라며 화를 내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그래도 나는 그 상황을 받아 들이기로 하였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응 하시겠습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