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75엔을 들고 쇼핑을 나오시다니...

 * 노인 분들의 신체 활동은 눈의 띄게 적습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못해서 젊은 시절처럼 신체활동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인 그들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이것 저것 하고 싶을 것이 틀림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없을지라도, 그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또한 그저 물건을 구경하기 위해, 쇼핑센터 혹은 백화점이나 마트로 가는 것 처럼 노인들도 그러한 욕구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노인들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작성해 봅니다.


 나는 근무 중인 노인시설에서의 역할중 하나는 차량운전이다. 우리 시설에서는 [데이 서비스]라는 개호 서비스를 지역사회 노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개호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노인 분들은, 오전에 우리 시설에 와서 하루의 시간을 알차게 보낸 후 오후에 각자 본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각자의 집에는 자녀를 비롯한 가족들이 있지만, 모두 노인들의 생활을 24시간 지켜 볼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직장에서 경제활동을 해야 할 것이고, 가족을 위해서 시장도 봐야 할 것이며, 손자 손녀들은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의 식사 및 시간을 함께 할 사람이 없기에 식사는 물론 노인들의 신변안전에 관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낮 시간 뿐만 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어느 가정에서나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복지 시스템이 '데이 서비스'이다. 즉 노인들의 유치원인 셈인 것이다.

 사족으로, 일본에서는 [데이 서비스]를 [데이 사비스]라고 발음한다. 영어 단어인 [Day Service] 의 일본식 발음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일본인들의 영어발음은 항상 나를 당황하게 한다. 참고로 일본어에는 [어] 발음이 없다. 그래서 [서비스]를 [사비스] 라고 발음한다.

 이른 아침부터 차량운행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차 키를 들고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리 시설에는 [후지이] 라는 이름을 가지신 일본인 할머니가 계신다. [후지이] 할머니는 거실에서 휠체어에 앉아, 물끄러미 들락날락 거리고 있는 나를 쳐다보시고 계셨다.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시다가 차량 운행이 끝나고 거실로 다시 돌아왔을 즈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나따, 아사까라 도꼬니 잇따리 킷따리 수루노?" - [너 아침부터 어디를 그렇게 왔다 갔다 하고 있니?]

"저, 차량 운행 하잖아요. 아침부터 차 운전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직장에 출근했으니 열심히 일을 해야 월급을 받죠. 돈이 쉽게 벌어지나요?"

"호호호, 그래 너 말이 맞다. 돈 벌기 참 힘들지. 직장에서 놀면서 돈을 받아 갈 순 없지. 근데 저기, 너 운전 잘 하니?"

"운전 이요? 잘 하죠. 최고! 최고!"

"그래. 너 운전 할 줄 알면, 어디라도 괜찮으니 나 좀 데리고 가 줄 수 있니? 매일 하루종이 이렇게만 앉아있으니 무료하고 심심 하구나"

"그래요? 어디 가고 싶으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몰라. 그냥 어디라도 괜찮으니 좀 외출하고 싶어. 어디 쇼핑 이라도 갈까?"

"그럴까요? 그럼,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시설 책임자에게 한 번 물어 볼게요"

라고 후지이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한 뒤, 시설장 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후지이 할머니를 모시고 쇼핑을 다녀와도 되는지 물어 보았다. 시설 책임자는, 점심식사 이후에 잠깐 한가한 시간이 있으니 그 때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고 하시며 나에게 물어 보셨고, 나는 그 시간을 이용해 잠깐 외출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보고를 마쳤다.

후지이 할머니는 아주 가벼운 인지증을 가지고 계신다. 인지증이 거의 없다고 해도 괜찮을 정도의 가벼운 상태 이시다.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신체의 노화로 인하여 여러가지 잔병치레로 인한 합병증과 신체근육의 감소, 다리의 부종 등으로 스스로 걷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 이시다. 그래서 휠체어에 의지하여 항상 움직이시는 분이시다. 아마도 뛰어다니며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바라보시며, 본인도 그렇게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다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언젠가 내가 일이 너무 힘들어 축 쳐져 있을 때, 후지이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시더니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

"일이 힘들지? 아마 힘들거야. 이렇게 노인들을 돌보느라 온 힘을 다 사용하고 있으니 당연히 힘들지. 지금의 너처럼, 너무 힘들어 기운이 빠져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안쓰러운 생각이 든단다. 그런데 말이야. 더 솔직한 나의 마음은, 너가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더 크단다. 나도 기운만 있다면, 조금만 젊어 내가 내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기운만 있다면, 너처럼 일을 하고 싶어. 정말 무슨 일이든 괜찮으니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활동하고 싶단다. 언젠간 너도 노인이 되어 나처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앉아만 있어야 되는 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지. 그러나 일단 지금은 너가 젊고 기운이 있으니, 뭐든지 열심히 하렴. 너가 지금은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힘들게 일 하고 있는 너를 바라보며, 그저 부러워만 하고 있는 나같은 노인들도 있단다. 그러니 힘내렴. 화이팅 하렴"

 후지이 할머니의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힘을 내서 일을 한 적이 있다. 정말 맞는 말씀 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젊고 뭔가 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지 않은가. 간혹, 내가 하는 이 일이 너무 볼품 없어 보이고, 너무 힘이 들고, 보수가 적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외국에서 뭐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후지이 할머니의 이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내 삶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누군가는 내 삶을 부러워하고 있구나. 별볼일 없어 보이는 이 직업을 가진 삶도,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사무치도록 부러운 삶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노인분들의 삶을 옆에서 지탱해 드리며 나에게 주어진 일에 오늘도 최선을 다 해야되겠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유효하다.

 후지이 할머니가 쇼핑을 가고 싶다고 하신 그 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후, 나는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리무진을 준비했다. 그리고 휠체어에 올라있는 그 모습 그대로 리무진의 뒷자석에 탑승 하도록 차량에 달린 리모컨 조작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쇼핑센터에 도착하여 즐거운 쇼핑을 시작하였다.

 가장 처음에 들렀던 매장은 [다이소] 매장이었다. 그 곳에서 후지이 할머니는, 

"이렇게 좋은 물건이, 이렇게 가격이 싸다니..."
라고 연신 말씀하시며 감탄하셨다. 그렇게 30분간을 이 물건, 저 물건을 만져보시며 눈이 빠지실 것처럼 구경 하셨다. 그러나 후지이 할머니는 아무 물건도 구입하지 않으시고 나가자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할머니, 뭐 안사세요? 여기 [다이소]에 있는 것들, 전부 구입하실 것 처럼 보시더니, 설마 아무것도 안 사시는 건가요?"

"여기는 딱히 구입 할 만한 것이 없네. 맘에 안들어. 1층에 있는 슈퍼나 한 번 가볼까?"
라고 하셨다.

'응??? 완전 신나게 30분동안 구경 하시면 재미있어 하셔 놓고선 뭔 말씀 이시래? 하여간 노인들 변덕이란 종 잡을 수 없군'
이라고 혼자 생각하며, 후지시 할머니의 휠체어를 뒤에서 밀며 1층으로 이동했다. 1층에는 [이온 슈퍼] 라고 하는 곳이 있었다.

 1층의 슈퍼에 도착하자, 후지이 할머니는 귤을 사야겠다고 하시며 귤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우리는 과일코너로 향했고 그 곳에서 다시 한참을 고민하시더니, 650엔이라고 가격표가 적혀있는 귤 봉지를 집으시고 본인의 무릎에 올려 두셨다.

"나는 이거 사야겠다. 너도 뭐 하나 먹을래?"
라고 할머니가 나에게 물으셨고,

"아뇨~ 저는 괜찮아요"
라고 대답을 했다. 그 때, 대답을 하며 한 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할머니, 돈은 가지고 있나?'

후지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후지이 할머니, 지갑은 가지고 오신거죠?"

"당연하지, 지갑 가지고 왔지"

"지갑에 돈은... 들어 있죠?"
라고 내가 다시 물었다. 후지이 할머니는,

"있을걸? 있을 거라고 생각해"

'엥?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어째 불안한데...'

"너가 한 번 확인해 봐"

"네. 제가 한 번 지갑 좀 볼게요. 실례 좀 하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며, 지갑을 살펴 보았다. 

그러나, 왜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하는 것인가. 후지이 할머니의 지갑 속에는 75엔 밖에 없었다. 맙소사.

"할머니, 지갑에 75엔이 있네요. 이럴 수가. 이 돈으로는 여기서 아무 것도 못사요. 맙소사. 이거 귤 어떻게 하실거에요. 못 사요~ 못 사!"
라고 했더니, 후지이 할머니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나는 말을 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후지이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머니, 우리 75엔으로 여기서 뭐 살만한 것이 없는지 매장을 다시 한 번 돌아 볼까요?"
라고 말씀드린 뒤, 상품들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품들의 가격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야채코너에 양파의 낱개 1개의 가격이 50엔 이었다.

"할머니, 여기 양파 살 수 있어요. 1개에 50엔이네. 이거 사실래요?"
라고 내가 말하자.

"그거 사서 뭐하게? 내가 요리를 하냐? 필요없어"
그렇다. 맞는 말이다. 양파 하나 사서 뭐할 것인가? 본인이 요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당하신 거절 이시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보물찾기. 저쪽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가 보였다.낱개 1개에 20엔!! [우마이봉]

"여기 과자 싼 거 있네. 20엔! 20엔! 이거 세 개 살수 있어요. 할머니!"

"과자 누가 먹냐? 니나 먹어라! 필요 없어"
그렇다 후지이 할머니는 틀니를 사용하신다. 씹는 것이 불편하셔서 과자를 싫어 하신다. 지당하신 거절.

그리고 다시 시작된 보물 찾기. 그 때, 후지이 할머니가 나에게 물어보셨다.

"리포비탄은 얼마니?"

"네? 리...? 뭐라고 하셨죠? 리? 그게 뭐지?"

"리포비탄!"

"그게 뭐죠?"

나는 그 때까지 '리포비탄' 이 뭔지 몰랐다. 근처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 직원은 '리포비탄' 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리포비탄' 이라고 하는 물건은, 한국의 '박카스'같은 자양강장제 인 듯 보인다. 사스가 노인들이 좋아할 만 하다. 그러나! '리포비탄'은 110엔 이었다.

"여기 있네요. 리포비탄, 근데 리포비탄 110엔인데요? 할머니 무리데수~"

'리포비탄' 의 가격까지 확인한 뒤, 후지이 할머니는 이내 침울해 지시고 말았다.

"후지이 할머니, 오늘은 물건 구입하는 것이 무리인 듯 보이니, 이제 그냥 돌아갈까요?"
라고 말을 걸었다.

"그럴까?"
라며 침울한 표정과 함께 힘빠진 목소리로 할머니는 대답을 했다. 슈퍼의 출구로 이동하던 중, 아이스크림 진열대에서 후지이 할머니는 다시 물었다.

"아이스는 얼마니?"
라고 하시며, 마지막으로 도전을 했다. (일본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을 그냥 '아이스'라고 부른다) 그 곳에 있는 아이스크림 중 가장 싼 아이스 크림이 85엔이었다. 10엔이 부족하다. 젠장. 이럴수가. 이런 빈곤의 슬픔이 있나.

"후지이 할머니, 제일 싼 아이스가 85엔 인데요?"

아이스크림 진열대 앞에서 더 침울해진 후지이 할머니를 바라보며, 결국 어쩔 수 없이 할머니의 기분을 풀어 드리기 위해 내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85엔 짜리 아이스크림을 두개 구입했다.

"어쩔 수 없군. 후지이 할머니, 오늘은 내가 쏩니다"

"그... 그럴래?"

'이럴 수가. 왠지 당한 기분인데? ㅋㅋ"

 아이스크림을 두 개 구입한 후, 휠체어에 앉아있는 할머니의 무릎에 아이스크림을 올려둔 상태로 슈퍼의 밖으로 나왔다. 슈퍼의 외부에 벤치가 보여 그 쪽으로 휠체어를 밀었다. 그리고 벤치에는 내가 앉고, 후지이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채로 한국의 '빵빠레 아이스 크림'처럼 생긴, 아이스 크림을 둘이서 핥아 먹기 시작했다.

 다 큰 어른 두 명이, 슈퍼 밖에 있는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핥아먹고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이건 뭐 연인사이도 아니고 둘이서 밖에서 뭐하는 상황 인감? 지나가던 사람들도 우리를 힐끗 힐끗 쳐다본다. 누가 봐도 개호직원인 사람이 유니폼을 입고 벤치에 앉아 있고, 누가 봐도 개호시설 할머니로 보이는 노인이 옆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홀짝 거리고 있으니 눈길이 가는 듯 했다.

 그 때, 슈퍼 옆에서 타코야끼를 팔고 있던, 타코야끼 사장 같은 사람이 우리 쪽을 힐끗 힐끗 계속 쳐다보는 듯 싶더니, 엄청나게 큰 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타꼬야끼 6개에 220엔~!!!"

이 상황에 영업을 당하다니.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이 이제는 대놓고 우리를 쳐다본다. 과연 이 상황에 내가 뭐라고 할 것인가?

"다이조데수~!!" - [괜찮습니다]

라고 일본어로 말한 뒤, 속으로 다시 말했다.

'이 할머니 돈 70엔 밖에 없는데, 소리 지르지말고 입 좀 다물어 줄래? 사람들 쳐다보니까!'


그렇게 아이스 크림을 다 먹고, 개호시설로 돌아왔다. 시설로 돌아오는 우리 두 사람을 발견한 다른 일본인 직원이 후지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후지이상, 맛있는 것 많이 샀어요?"
라고 말을 걸었고, 나는 옆에서 대답했다.

"후지이상, 지갑에 75엔 밖에 없었어요. 맙소사. 결국 내 돈으로 아이스크림 사서 둘이서 밖에서 홀짝 거리며 먹고 왔네요"
라고 말하자,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날 저녁, 퇴근하면서 후지이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후지이상, 다음에 쇼핑 갈 때는 75엔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 때는 쇼핑 안 갑니다~"

라고 말하자, 후지이 할머니는 웃으며 나에게 대답을 했다.

"알겠어, 호호호. 오늘 고마웠어요. 조심히 집에 돌아가렴"

"잘 주무세요 할머니~"

그렇게 그날 하루 일과를 마쳤다.



끝.